뮐러의 이론2

이는 곧 지각하는 자의 문제로서 말하자면 그의 경험적 본성이 사물들의 정체성을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것으로 만들며 그에게 있어 감각들은 다른 것으로 서로 교체가 가능한 것이 된다. 기억해야 될 것은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진 시기가 대략 1830년이라는 점이다. 사실상 특수 신경 에너지 학설은 시각을 다음과 같은 것으로서 즉 어떤 지시대상과 아무런 필연적인 연관도 갖지 않는 감각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따라서 어떠한 일관된 의미 체계를 위협하는 것으로서 재규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뮐러의 이론은 잠재적으로 대단히 허무주의적이었기에 그 이론의 실험적 전제들을 받아들였던 헬름흘츠 등이 그러면서도 그 이론에 포함돼 있는 강경한 문화적 함의들을 은폐하는 인지론과 의미론을 창안할 수밖에 없었단느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됐으며 또 그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던 것은 단지 감각의 신뢰할 수 없음에 관한 인식론적 회의론의 새로운 형태였던 게 아니라 바로 지각과 그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이었다. 말하자면 쟁점은 단순히 무엇이 실재적인 것인가를 엄떻게 아느냐가 아니라 실재적인 것의 새로운 형식들이 만들어지고 인간 주체의 능력에 관한 새로운 진리가 이러한 용어들로 설명된다는 것이었다.

 

 

특수 신경 에너지 이론

특수 신경 에너지 이론은 외적 감각과 내적 감각 사이의 구분을 지워버렸고 그래서 내면성은 한때 그것이 고전적 관찰자나 혹은 카메라 옵스큐라 모델에 대해 가졌던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뮐러는 주체를 어떤 단일한 백지 상태로서가 아니라 어떤 혼합적인 구조로서 제시한다. 말하자면 그 구조 위에서 광범위한 기술들과 힘들은 다양한 경험들을 산출할 수 있는데 그 경험들은 모두 다 대등하게 실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존 러스킨이 눈의 순결을 재생할 것을 제안한다면 이는 곧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한에서의 순결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관찰자는 동시에 인식의 대상이고 또 자극 및 정상화 과정들의 대상으로서 그 같은 자극 및 정상화 과정들은 주체를 위해 경험을 산출할 수 잇는 본질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17세기에는 시각 및 반사 광학을 지시했던 반사 원호와 반사 행위라는 개념들이 이제는 주체에 대한 새로운 테크놀러지의 주된 특징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 같은 테크놀러지는 파블로프의 연구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신경

 

자극과 감각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뮐러가 제시하는 것은 감각들의 질서 있고 법칙적인 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들은 계산된 조작과 교란을 받을 수 있단느 점이다. 헬름흘츠의 동료였던 에밀 뒤부아-레이몽-은 신경들을 전기에 의해 상호 연결시킴으로써 눈이 소리들을 볼 수 있고 귀가 색들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추구했는데 이는 분명히 랭보의 시(랭보의 언어의 연금술 중에는 나는 모음들의 세계를 발명했다. A는 검고, E는 하얗고, I는 붉고, O는 파랗고, U는 푸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역자 주)에 앞선 것이다. 뮐러의 연구와 또 19세기 정신물리학(물리적 자극과 감각적 반응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의 한 분야-역자 주)의 연구는 그 당시의 전기학 및 화학에서의 성과들로 인해서 활용가능해진 자원들과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뮐러에 의해 제시된 경험적 증거 중 일부는 고대부터 활용되어 왔거나 혹은 상식적인 지식에 속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은 전기-물리적 기술들의 합성물에 유별나게 특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감각을 구성하는 것은 극적으로 확장되고 변형되며 그리하여 18세기에 논의되던 방식과는 거의 공통된 것이 없게 된다. 뮐러의 특수 신경 에너지 학설과 19세기 모더니티의 테크놀리지 사이의 근접성은 특히 헬름흘츠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감각

인간 신체의 신경들은 정확히 전선들과 비교되어 왔다. 이 때 하나의 전선은 단 한 가지 종류의 전기 흐름만을 통하게 한다. 어떤 전선은 더 강하고 어떤 전선은 더 약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전선은 어떤 방향으로든 이동할 수 있으며 또한 어떤 다른 질적 차이도 지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전선의 전기 흐름을 막히게 하는 장치의 종류에 따라 우리는 전보를 보낼 수도 있고 벨을 울리 수도 있고 광산을 폭파할 수도 있고 물을 분해할 수도 있고 자석을 옮길 수도 있고 철을 자석화할 수도 있고 빛을 밝힐 수도 있다. 동일한 현상이 우리의 신경들에서도 일어난다. 신경들 내에서 산출될 수 있고 또 신경들에 의해 전달되는 흥분 상태는... 어디에서건 동일하다.

 

 

헬름흘츠의 관점

감각들의 특수화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도 헬름흘츠는 신체가 신체적 경험의 원천들에 대해 또 서로 다른 힘들의 작용이나 혹은 기계장치들과 다양하게 연결될 수 잇는 신체적 능력의 원천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에 관해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지각자는 하나의 중립적인 배관, 즉 그 배관에 흐르는 것이 상품이건 에너지이건 자본이건 이미지이건 정보이건 간에 순환 및 교환가능성의 최적의 조건들을 허용하기 위한 일종의 중계 장치가 된다. 

 

관찰자의 위상에 대한 모델로서 더 이상 카메라 옵스큐라를 채택하지 않게 된 것은 근대화의 좀더 광범위한 과정 중 일부분인다. 카메라 옵스큐라 그 자체가 초기 모더니티의 한 요소였지만 그러나 1800년대 초반에 이르자 카메라 옵스큐라의 엄격성, 선적인 광학 체계, 고정된 위치, 내부와 외부의 범주적인 구분, 지각과 대상의 동일시는 모두 너무 경직된 것이어서 새로운 세기의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좀더 유동적이고 유용하며 생산적인 관찰자가 담론과 실천 모두에서 요구됐는데 즉 그 같은 관찰자란 신체의 새로운 용도들에 적합하며 또 유동적이면서 교환 가능한 기호들과 이미지들의 엄청난 확산에 적합한 관찰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화는 시각의 탈코드화 및 탈영토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했다.

 

 

시각의 재구성

이 글에서 나는 1840년까지의 시각의 재구성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우리의 문제가 시각과 모더니티라면 우리는 1870년대와 80년대의 모더니즘 회화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바로 이 시기들 즉 1840년까지의 시기들을 웅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유형의 관찰자가 이 시기들에 형성됐으며 그 같은 관찰자는 우리가 그림들이나 판화들에서 볼 수 잇는 인물 형상이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훈련받아왔다. 즉 그 생각이란 관찰자는 항상 시각적인 행적들을 남길 거란느 말하자면 이미지들의 관점에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관찰자가 다른 즉 좀더 불분명한 담론들과 실천들 가운데 구체화된다는 점이며 또 그러한 그의 막대한 유산이 20세기에는 모두 이미지 및 스펙터클 산업이 된다는 점이다.

카메라

시각에 있어서 중립적이거나 혹은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신체가 이제는 시각에 대한 지식이 그로부터 도출되는 두꺼운 층이 되었다. 관찰자의 이러한 불투명성이나 신체적 밀도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시야에 드러났기에 그것의 완전한 결과들인 효과들은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시각을 신체 속에 머무는 즉 사실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의 계속 된 논의가 바로 모더니즘의 예술적 실험과 또 푸코가 개인들의 테크놀로지라 부르는 새로운 지배 형식들 양자 모두를 가능케 한 조건이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의 지배 및 스펙터클의 테크놀로지들과 불가분적인 것은 물론 영화와 사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와 사진이라는 이 두 기술의 헤게모니 증대는 시각이 비육체적이고 사실과 관계 있는 따라서 실재론적이라는 신화를 재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만약 영화와 사진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화신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단지 모더니티가 이미 내던져버린 일련의 투명한 관계들이라는 망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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